기록적 한파에 뚫린 ‘에너지 안보’… 미국, 화석 연료 의존도 심화와 공급망 과제
2026년 초, 미국 전역을 강타한 겨울 폭풍 ‘펀’은 미국의 에너지 공급망에 심각한 경고등을 울렸다. 기록적인 한파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 속에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기여도가 급락하자, 미국은 다시 석탄과 석유 등 전통적 화석 연료와 비축 자원에 의존하며 위기를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1. 위기 속의 역설: 석탄·석유 발전의 급격한 귀환
EIA의 분석에 따르면, 폭풍이 몰아친 1월 말 미국의 에너지 믹스는 평시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석탄 발전의 급증: 1월 25일로 끝나는 주간 동안 미국 본토(Lower 48 states)의 석탄 화력 발전량은 전주 대비 31%나 폭증했다. 이는 전체 발전 비중의 21%를 차지하며 천연가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에너지원 역할을 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이 급감한 사이, 석탄이 ‘최후의 보루’로서 전력망을 떠받친 것이다.
뉴잉글랜드의 석유 역전 현상: 특히 에너지 인프라가 취약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1월 24일부터 26일 사이, 석유 발전량이 천연가스 발전량을 추월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난방용 가스 수요가 폭증하며 발전용 가스 공급이 제한되자, 발전소들이 다급히 중유(Residual oil)와 경유를 태워 전력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2. 비축 에너지의 한계: 기록적인 천연가스 재고 인출
한파는 미국이 비상시를 대비해 쌓아둔 에너지 비축량마저 빠르게 잠식했다.
역대급 재고 감소: 2026년 1월 30일로 끝나는 주간에 미국의 천연가스 재고는 3,600억 입방피트(Bcf)가 인출되었다. 이는 2010년 이후 역대 10번째로 큰 주간 인출 규모다.
공급망 병목 현상: 극한의 추위로 인해 가스 생산 설비가 얼어붙는 ‘프리즈 오프(Freeze-offs)’ 현상이 발생하면서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나는 이중고를 겪었다. 이로 인해 헨리허브(Henry Hub) 천연가스 현물 가격은 일주일 만에 80% 이상 급등하며 에너지 비용 부담을 가중시켰다.
3. 향후 미국 에너지 정책의 지향점: ‘안보’와 ‘유연성’의 조화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이 추진해야 할 향후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은 더욱 명확해졌다.
첫째, 천연가스 생산 및 저장 인프라의 확충이다. EIA는 2026년과 2027년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퍼미안(Permian)과 애팔래치아(Appalachia) 지역의 생산량을 안정적으로 수송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 용량 확대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둘째, 전력망의 ‘연료 전환 능력(Fuel-switching)’ 강화가 필요하다. 뉴잉글랜드 사례에서 보듯, 특정 에너지원 공급이 차단될 때 즉각 대체할 수 있는 설비와 비축 연료(유류 등)의 관리가 극한 기후 시대의 필수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셋째, 재생에너지와 화석 연료 간의 전략적 균형이다. 탄소 중립 목표에도 불구하고, 기상 이변 시 전력망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저 부하(Base-load)’로서의 원자력과 고효율 화석 연료 발전소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국 미국 에너지 정책은 단순한 친환경 전환을 넘어, 어떠한 극한 환경에서도 에너지를 끊김 없이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최우선 가치로 두어야 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